손가락만 한 아이
강가 오두막에 사는 할머니는 빨래를 하다 말고 자주 하늘에 빌었어요. “손가락만 해도 좋으니, 아이 하나만 우리 집에 와 주었으면.” 곁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할아버지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까요. 이듬해 봄, 노부부에게 정말로 아기가 태어났답니다. 그런데 아기는 꼭 어른 손가락만 했어요. 노부부는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고, 아기를 두 손바닥에 올려 어르고 또 얼렀습니다.
아이는 해가 갈수록 마음이 자랐어요. 키만은 손가락만 한 그대로였지만요. 바늘귀에 실을 꿰는 일도, 좁은 틈에 굴러 들어간 콩을 찾는 일도, 마을에서 아이를 따를 사람이 없었지요. 다들 그 작은 손을 기다렸답니다.
열다섯이 되던 해, 아이는 노부부 앞에 반듯하게 앉았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 강을 따라 도읍에 다녀올게요. 넓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이 눈으로 보고 올게요.” 놀란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지만, 아이의 눈이 별처럼 또렷해서 차마 말리지 못했어요.
할머니는 바느질 상자에서 제일 곧은 바늘을 골라 지푸라기 칼집에 꽂아 주었지요. “이건 네 칼이란다.” 할아버지는 부엌에서 제일 큰 밥그릇과 젓가락 한 짝을 내왔어요. “이건 네 배, 이건 네 노란다.”
강가에 밥그릇 배를 띄우자, 배는 둥실둥실 잘도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젓가락 노를 한 번 저을 때마다 물이 찰방찰방 뱃전을 두드렸어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배를 가진 사공이 된 기분이었지요. 노부부는 배가 강굽이를 돌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답니다.
강은 아이를 태우고 천천히, 천천히 흘러갔답니다. 잠자리가 노 끝에 앉았다 날아가고, 오리 가족이 배 옆으로 나란히 헤엄쳐 왔지요. “어디 가니, 조그만 사공아?” “도읍에 가요! 세상 구경 하러 가요!”
해가 기울면 아이는 갈대 그늘에 배를 대었습니다. 밥그릇 배는 요람처럼 흔들리고, 물소리가 밤새 나긋나긋 말을 걸어 주었지요. 아이는 뱃바닥에 누워 별을 세다 잠들었어요. 그렇게 며칠을 흘러가자, 마침내 도읍의 커다란 다리가 보였답니다.
도읍에서 제일 큰 기와집 대문 앞에서, 아이는 있는 힘껏 외쳤습니다. “계세요! 일하러 온 사람이에요!” 대감님은 소리 나는 쪽을 한참 찾다가, 섬돌 위에 선 조그만 아이를 보고 눈이 커졌어요. “허어, 이렇게 작은 일꾼은 처음 보는걸.”
“몸은 작아도, 할 수 있는 일은 작지 않아요.” 아이가 어찌나 야무지게 대답하는지, 대감님은 환하게 웃으며 아이를 집에 들였답니다. 아이는 곧 그 집 아가씨의 둘도 없는 길동무가 되었어요. 책장을 넘겨 주고, 굴러간 구슬을 찾아 주고, 어깨 위에 앉아 노래도 불러 주었지요.
어느 봄날, 아가씨가 꽃구경을 나섰습니다. 아이도 아가씨 어깨에 앉아 함께 길을 나섰지요. 그런데 산모퉁이 길목에, 커다란 도깨비 하나가 길을 막고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가씨는 그만 걸음을 멈추고 말았어요. 그때 아이가 어깨에서 뛰어내려, 길 한가운데를 막아섰습니다. 그러고는 허리에 찬 바늘 칼을 천천히 뽑아 들었지요. “우리 아가씨는 꽃구경 가는 길이에요. 지나가시려면, 저하고 먼저 인사부터 하셔야 해요.”
도깨비는 허리를 굽혀 그 조그만 아이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지요. 아이는 조금도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도깨비를 마주 보고 있지 뭐예요. “아이고, 세상에! 요만한 게 요렇게 겁이 없다니!” 도깨비는 그만 저부터 기겁을 해서, 들고 있던 방망이를 떨어뜨리고 산 너머로 달아나 버렸답니다.
아가씨는 떨어진 방망이를 찬찬히 주워 들었습니다. “이건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 방망이인가 봐. 커져라, 커져라, 우리 용감한 아이.” 방망이를 흔들 때마다 아이는 한 뼘씩, 또 한 뼘씩 자라났어요. 마침내 아이는 누구보다 늠름한 젊은이가 되어 있었답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키가 자랐는데도, 사람들이 좋아한 것은 예전 그대로의 그 마음이었어요. 젊은이는 아가씨와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가, 고향의 노부부를 도읍으로 모셔 왔답니다. “어머니, 아버지, 저예요. 손가락만 하던 그 아이예요.”
잔잔한 밤이면 젊은이는 식구들에게 그 강 이야기를 들려주었대요. 밥그릇 배가 둥실둥실 물결을 타넘던 이야기, 젓가락 노에 찰방찰방 와 닿던 물소리 이야기. 이야기가 끝날 무렵이면 다들 눈이 감겼지요. 마치 그 작은 배를 타고, 함께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처럼요.
할머니가 지푸라기 칼집에 꽂아 준 바늘 한 자루 말이야.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칼이었지만, 아빠는 그 칼이 어떤 커다란 칼보다 미덥게 느껴졌어. 그 칼의 힘은 뾰족한 끝이 아니라, 작은 몸으로 아가씨 앞을 막아선 그 마음에서 나온 거거든.
밥그릇처럼 조그만 배든 아주 커다란 배든, 배는 결국 노를 쥔 손이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단다. 아빠는 배의 크기보다, 젓가락 노를 쥔 손이 어디로 저어 가고 싶은지 아는 마음이 훨씬 소중하다고 믿어. 작다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랄 자리가 그만큼 넉넉하다는 뜻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언젠가 우리 아가가 저만의 강을 따라 떠나는 날, 아빠는 그 강둑에 서서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사람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