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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옛이야기 · 일본 전래동화 '하나사카지이산(꽃 피우는 할아버지)'

꽃 피우는 할아버지

동양 전래동화 · 아빠 태담 잠자리 이야기 · 약 4분

흰 강아지 한 마리가 마당 구석을 앞발로 파고 또 파고 있었어요. “멍멍! 여기예요, 여기!” 꼬리는 어느새 부채처럼 흔들리고 있었지요.

마루에서 새끼줄을 꼬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마음씨 곱기로 온 마을에 소문난 할아버지였지요. “우리 흰둥이가 무얼 찾았누?” 할아버지는 호미를 들고 천천히 마당으로 내려왔어요.

흙을 헤치자 호미 끝에 무언가 단단하게 닿았습니다. 둥근 항아리였는데, 그 안에 금빛 보물이 가득했더랍니다. “아이고, 흰둥아. 네가 우리한테 봄을 물어다 주었구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그 보물을 둘이서만 쓰지 않았어요. 쌀을 나누고 떡을 빚어 온 마을에 고루 돌렸지요. “혼자 먹는 밥보다 나눠 먹는 떡이 더 달지요.” 할머니의 말에 골목마다 웃음이 번졌답니다.

그 소문을 들은 옆집 영감이 흰둥이를 빌려 갔지요. 제 마당 한가운데 강아지를 내려놓고는 코앞에 대고 재촉했습니다. “여기야, 여기. 어서 보물 나올 자리를 찾아 다오.”

그런데 그 마당에서는 돌멩이와 나무뿌리만 나왔어요. 영감은 입이 잔뜩 나온 채 흰둥이를 돌려보냈답니다. “괜찮다, 괜찮아. 흙투성이 발이 오늘도 애를 썼구나.” 할아버지는 강아지 발을 가만히 닦아 주었지요.

늦가을 어느 밤, 큰바람이 밤새 마을을 흔들고 지나갔더랍니다. 아침 마당에는 늙은 나무 한 그루가 조용히 누워 있었어요. 보물이 나온 자리 곁에서 흰둥이에게 그늘을 드리워 주던 나무였지요.

할아버지는 쓰러진 나무를 한참 쓰다듬었습니다. “이대로 보내긴 아깝지. 우리 집 절구로 다시 살아 다오.” 나무는 곧 둥글고 단단한 절구로 다시 태어났답니다.

새 절구에 찧은 떡은 유난히 차지고 달았대요. 떡메 소리가 나는 날이면 할머니는 이웃 몫부터 먼저 덜어 두었지요. 흰둥이도 절구 곁을 맴돌며 코를 높이 들었고요.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 절구는 점점 낡아 갔어요. 할아버지는 갈라진 절구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구나. 이제 아궁이에서 따뜻하게 쉬거라.” 절구는 마지막으로 방 한 칸을 데우고, 고운 재 한 줌이 되었지요.

이튿날 아침에도 흰둥이는 식은 아궁이 앞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앞발로 재를 긁으며 할아버지를 자꾸 돌아보았지요. “멍멍! 이번에는 이거예요!” 그 눈빛을 할아버지는 단박에 알아보았답니다.

할아버지는 재 한 줌을 두 손에 담아 마른 가지 앞에 섰습니다. 손을 높이 들어 폴폴 뿌리자, 잿가루가 겨울 가지 위에 눈처럼 내려앉았지요. 그런데 잿가루가 앉은 자리마다 조그만 꽃망울이 맺히는 게 아니겠어요?

꽃망울은 숨 한 번 쉴 사이에 활짝 벌어졌지요. 마른 가지도, 담 너머 나무들도 한꺼번에 하얗게 피어났답니다. “겨울에 꽃이라니! 꽃 피우는 할아버지가 여기 계시네!” 달려온 마을 사람들이 손뼉을 쳤어요.

옆집 영감도 부리나케 달려와 재를 한 움큼 집어 힘껏 내던졌답니다. 그런데 바람이 그만 방향을 바꾸어, 잿가루가 폴폴 영감의 수염 위로 내려앉았지 뭐예요. 영감은 머쓱해져서 헛기침만 했지요.

“바람은 급한 손보다 가만한 손을 좋아한다오. 자, 우리 같이 해 봅시다.” 할아버지는 영감의 수염에 앉은 재를 털어 주며 말했지요. 두 사람이 나란히 손을 흔들자, 영감네 마른 가지에도 꽃이 피어났습니다. “고맙소… 나눠 주니 내 마당에도 봄이 오는구려.”

그날 저녁, 고갯길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온통 하얀 꽃구름에 잠겨 있었답니다. 지붕과 지붕 사이마다 꽃가지가 다리를 놓았고, 저녁밥 짓는 연기가 그 사이로 천천히 올라갔지요. 제일 작은 마당에서는 할아버지 곁에서 흰둥이가 스르르 눈을 감았답니다. 꽃잎 하나가 그 코끝에 살짝 얹혔다가, 다시 가볍게 날아올랐지요.

아빠 한마디 ✶

강아지가 파 보라던 자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걸음, 쓰러진 나무를 절구로 다시 살린 손, 다 타고 남은 재 한 줌마저 버리지 않은 마음. 오래오래 쌓인 그 다정함이 어느 아침, 한꺼번에 핀 거란다.

재 한 줌. 그건 절구가 마지막으로 남긴, 제일 작고 가벼운 선물이었지. 우리 아가 곁에도 그렇게 작아 보이는 것들이 많이 놓일 거야. 아빠는 우리 아가가 작은 것 안에 잠든 꽃을 알아보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빠는 믿어. 흰둥이와 할아버지처럼 서로를 오래 아끼는 마음은, 제일 추운 계절에도 끝내 꽃으로 돌아온다고. 그 꽃그늘 아래에 우리 아가와 나란히 앉아 있고 싶어.

잘 자렴, 우리 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