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 씨름한 아이
키 큰 삼나무가 줄지어 선 아시가라산, 아침이면 하얀 안개가 골짜기마다 솜이불처럼 내려앉았어요. 그 산 중턱 작은 오두막에 킨타로라는 사내아이가 살았답니다. 빨간 배두렁이 하나만 두르고, 사철 맨발로 산을 누비는 아이였지요.
킨타로는 온 산에서 힘이 제일 셌습니다. 개울을 막은 바윗돌도 번쩍 들어 비켜 놓을 만큼요. 그래도 그 힘으로 누구를 밀치거나 겁준 적은 한 번도 없었대요.
킨타로에게는 아침마다 찾아오는 동무가 셋 있었어요. 느릿느릿 걷는 커다란 곰, 귀가 쫑긋한 하얀 토끼, 나뭇가지를 타고 휙휙 내려오는 원숭이. 해가 삼나무 꼭대기에 걸리면, 넷은 어김없이 산마루 풀밭에 모였답니다.
넷이 제일 좋아하는 놀이는 씨름이었지요. “끼끼, 오늘은 누가 이기나 볼까? 내가 금 그을게!” 원숭이가 나뭇가지로 풀밭에 둥근 금을 쓱쓱 그렸어요.
“몰라, 몰라! 그냥 실컷 뒹굴면 되지!” 킨타로는 깔깔 웃으며 곰의 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곰은 두툼한 앞발로 아이를 포옥 감싸 안았고요.
둘은 서로 밀고 당기다가, 그만 한꺼번에 풀밭에 벌러덩 넘어졌대요. “어흠, 또 같이 넘어졌구나. 오늘 풀밭은 유난히 푹신하구먼.” 곰은 커다란 배를 들썩이며 낮게 웃었어요.
“나도, 나도! 이번엔 나랑 해!” 토끼가 깡충깡충 뛰어들자, 킨타로는 손끝의 힘을 쏙 뺐어요. 토끼가 콩 밀기만 해도 일부러 데구루루 뒤로 굴러 주었지요.
그 풀밭에서는 누가 이겼는지 세어 보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금을 긋던 원숭이마저 어느새 한데 엉켜 뒹굴었으니까요. 해가 기울 때까지 웃음소리만 산비탈을 따라 굴러다녔답니다.
가을이 깊어 가던 어느 날, 원숭이가 높은 가지 위에서 소리쳤어요. “끼끼, 저기 좀 봐! 골짜기 건너 비탈에 알밤이 잔뜩 떨어졌어!” 모두의 눈이 건너편으로 쏠렸지요.
그런데 그 골짜기는 깊고 넓었습니다. 저 아래로는 차가운 물이 콸콸 흘렀고, 건너갈 다리는 하나도 없었어요. 원숭이야 덩굴을 타고 휙 건너가면 그만이지만, 곰과 토끼는 그럴 수가 없었지요.
“어떡해, 어떡해… 나는 못 건너!” 토끼의 긴 귀가 축 늘어졌어요. “나는 몸이 무거우니 여기서 기다리마. 너희끼리 다녀오너라.” 곰은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답니다.
원숭이도 혼자 건너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요. 알밤은 넷이 같이 주워야 더 고소하거든요. 그때 킨타로의 눈에, 비탈에 길게 누운 삼나무 한 그루가 들어왔습니다. 지난여름 큰바람에 쓰러진, 아주 굵고 긴 나무였어요.
“곰아, 기다리지 마! 내가 다리를 놓아 줄게!” 킨타로는 나무 밑동에 두 손을 대고, 발가락에 힘을 꽉 주었습니다. 끄응. 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더랍니다.
끄응, 끄으응. 빨간 배두렁이가 땀으로 촉촉해졌어요. “영차! 영차!” 토끼와 원숭이가 골짜기가 울리도록 목청껏 외쳤답니다.
그러자 굵은 나무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미끄러지기 시작했어요. 나무 끝이 골짜기 위로 천천히 뻗어 나가는 동안, 해는 산마루에 걸려 붉게 물들었지요. 곰도 토끼도 원숭이도 숨을 꼴깍 삼켰습니다.
쿵. 굵은 삼나무가 건너편 비탈에 반듯하게 걸쳐졌어요. “어흠, 이제 넷이 같이 건너겠구나.” 그 듬직한 쿵 소리가 골짜기를 한 바퀴 돌고 나자, 산은 다시 저녁 안개를 솜이불처럼 덮었답니다.
골짜기 위에 쿵 하고 걸쳐진 그 굵은 삼나무, 아빠는 자꾸 그 나무 다리가 눈앞에 그려져. 킨타로는 바윗돌도 번쩍 드는 아이였지만, 그 힘을 제일 귀하게 쓴 날은 친구들이 건너갈 길을 놓아 준 날이었지. 빨간 배두렁이가 땀에 젖도록 끄응 끄응 밀던 모습이, 아빠한테는 산에서 제일 힘센 모습이더라.
아가야, 너에게도 남보다 조금 잘하는 게 하나쯤 생길 거야. 빨리 달리는 다리일 수도, 고운 목소리일 수도, 친구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귀일 수도 있겠지. 그게 뭐든, 앞서 나가는 데보다 곁에 있는 누군가를 건너게 해 주는 데 썼으면 좋겠어.
그리고 누가 이겼는지 세지 않아도 해 질 때까지 같이 뒹굴 수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곁에 있으면 참 든든하단다. 오늘 밤은 아빠가 그 곰처럼 넉넉하게 웃으며, 우리 아가 곁에 나란히 누워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