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말을 들을까
동트는 아침, 아버지는 당나귀 고삐를 단단히 손에 감았습니다. 아들도 신이 나서 달려와 고삐 끝을 나누어 잡았지요. 오늘은 셋이서 고개 너머 먼 장터까지 다녀오는 날이거든요.
아버지와 아들은 터벅터벅, 그 옆에서 당나귀는 또각또각. 발소리 셋이 아침 길 위에 나란히 울렸어요. 들판 가득 새벽 풀 냄새가 번지는, 셋이 걷기 좋은 날이었답니다.
얼마 가지 않아, 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허리를 펴며 큰 소리로 외쳤어요. “아니, 멀쩡한 당나귀를 두고 왜 걸어간대요? 다리 아깝게!” 밭 끝까지 시원하게 울리는 목소리였지요.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듯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볍게 안아 올려 당나귀 등에 태워 주었어요. “우리 아들, 오늘은 임금님처럼 편히 가 보자.” 당나귀도 괜찮다는 듯 긴 귀를 천천히 흔들었지요.
고개를 하나 넘는데, 이번에는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말했어요. “허어, 아이는 타고 아버지는 걷는구먼. 내 어릴 적엔 안 그랬는데.” 느리고 낮게, 땅으로 가라앉는 목소리였답니다.
아들은 얼굴이 발개져서 얼른 미끄러지듯 내려왔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당나귀 등에 오르기로 했지요. “그럼 지금부턴 아버지 차례.” 아들은 고삐를 넘겨받아 잡고 씩씩하게 앞장을 섰어요.
우물가를 지날 때였어요. 물동이를 인 아주머니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한마디 건넸지요. “아이고, 저 어린것은 땀나게 걷는데 어른만 편하시네.” 말끝이 노랫가락처럼 길게 늘어지는 목소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얼른 아들의 손을 끌어 앞자리에 앉혔습니다. 이제 둘이 함께 당나귀 등에 나란히 올랐네요. “이러면 다들 좋다고 하시겠지?” 아버지가 아들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어요.
그런데 마주 오던 장사꾼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했어요. “저런, 조그만 당나귀에 둘씩이나 탔네? 당나귀 다리가 애쓰겠는걸.” 구르는 돌처럼 빠르고 가벼운 말투였지요.
아버지와 아들은 슬며시 당나귀에서 내려왔습니다. 타라고 해서 탔고, 내리라고 해서 내렸는데, 이번에도 또 틀렸다니요. 두 사람은 길 한가운데에 그대로 멈춰 서고 말았어요. 당나귀만 영문을 모르는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지요.
아버지가 무릎을 굽혀 아들과 눈을 맞추었지요. “얘야, 오늘 우리가 들은 말이 모두 몇 가지더라?” “타라, 내려라, 같이 타라, 둘 다 내려라… 네 가지요.” 아들이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대답했답니다.
아버지는 한바탕 웃고 나서 아들에게 천천히 물었어요. “말마다 조금씩은 맞아. 그런데 우리 마음을 물어본 사람도 있었니?” “아니요, 아버지. 그럼 이번엔 우리끼리 정해요.”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들은 당나귀의 목을 찬찬히 쓰다듬어 주었지요. “너도 오늘 태우느라 애썼구나. 이제부터는 셋이 같이 걷자.” 당나귀는 알아들었다는 듯 순한 콧김을 길게 내쉬었어요.
그다음부터는 정말로 셋이 나란히 걸었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터벅터벅, 두 사람 사이에서 당나귀는 또각또각. 길가에서 누가 무어라 해도 이제는 아무도 자리를 바꾸지 않았어요.
저만치 장터 어귀가 보이기 시작했지요. 장 구경 나온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반갑게 웃으며 말했대요. “참 보기 좋은 세 길동무일세.” 그 말에 아버지와 아들은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지요.
장터 마당에 들어설 때까지, 셋은 끝까지 나란히 걸었습니다. 아버지 곁에 아들, 아들 곁에 당나귀. 발소리 셋이 하나처럼 어울려서, 걸어온 먼 길이 조금도 힘들지 않았답니다. 오늘 하루 가장 마음 편한 길은, 셋이 함께 정한 이 마지막 길이었어요.
타라, 내려라, 같이 타라, 둘 다 내려라 — 오늘 아버지와 아들은 걸음마다 다른 말을 들었단다. 한 마디 한 마디는 다 그럴듯했는데, 전부 따르고 나니 두 사람은 길 한가운데 멈춰 서고 말았지. 남의 말은 바람 같아서, 부는 대로 다 좇아가면 길이 자꾸 흔들리거든.
귀를 여는 것과 마음을 내주는 것은 다른 일이란다. 고마운 말은 고맙게 받되, 마지막 한 걸음은 함께 걷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정하면 되는 거야. 무릎을 굽혀 서로에게 물었던 아버지와 아들처럼, 그렇게 정한 길은 누가 뭐라 해도 흔들리지 않더라.
먼 훗날 우리 아가가 헷갈리는 길 위에 서거든, 곁에서 발을 맞춰 걷는 사람과 마주 보고 정했으면 좋겠어. 아빠가 늘 그 곁의 첫 번째 사람이 되어 줄게. 셋이 나란히 걷던 그 길처럼, 우리도 그렇게 나란히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