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동물의 달리기
아주 먼 옛날, 하늘 임금님이 세상 짐승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한 해 한 해에 이름을 붙여 주시려는 것이었지요. “정월 초하루 아침, 내 집에 먼저 오는 열둘에게 한 해씩 주마.”
소식은 들과 산으로 금세 퍼졌어요. 짐승들은 저마다 마음이 들떴지요. 그날 밤엔 잠을 설친 이가 참 많았답니다.
소는 누구보다 걸음이 느렸더랍니다. “나는 느리니까, 남보다 일찍 나서면 되지.” 소는 그믐날 저녁부터 길을 나섰어요.
그 모습을 담장 위에서 지켜보던 이가 있었지요. 작고 까만 눈, 쫑긋한 귀. 쥐였습니다.
“소야, 나도 좀 태워 주렴.” “등이 넓으니 올라오려무나.” 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어요.
쥐는 소의 등에 폭 올라앉았답니다. 소는 뚜벅뚜벅, 밤새도록 걸었지요. 쥐는 따뜻한 등 위에서 꾸벅꾸벅 졸았고요.
새벽빛이 번질 무렵, 하늘 임금님의 대문이 보였어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지요. 소는 속으로 아주 조금 기뻤습니다.
그때 쥐가 폴짝, 소의 코앞으로 뛰어내렸지요. 그러고는 대문 안으로 쪼르르 들어가 버렸지 뭐예요.
“아이고, 쥐가 첫째로구나.” 하늘 임금님이 웃으셨습니다. 소는 눈을 껌뻑이다가 이내 순하게 웃었어요.
“서운하지 않으냐?” “밤새 등이 따뜻했는걸요.” 소의 대답에 임금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지요.
뒤이어 호랑이가 헐레벌떡 달려왔답니다. 토끼가 깡충깡충 뒤따랐고, 용이 구름을 타고 사뿐 내려왔어요.
뱀은 풀숲을 스르르 미끄러져 왔지요. 말이 갈기를 날리며 달려오고, 양이 방울을 딸랑이며 왔습니다.
원숭이와 닭과 개는 나란히 왔대요. 오는 길에 서로 손을 잡아 주었거든요. “먼저 가.” “같이 가자니까.”
마지막으로 돼지가 어슬렁어슬렁 나타났습니다. “늦어서 미안해요. 오다가 배가 고파서 그만.” 임금님은 껄껄 웃으셨어요.
그렇게 열두 이름이 정해졌답니다.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짐승들은 밤이 깊도록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소는 둘째가 된 것을 한 번도 아쉬워하지 않았대요. “내가 걸은 밤길이 어디 가나요.” 지금도 소는 그렇게 느릿느릿, 제 걸음으로 걷는답니다.
소는 제가 느리다는 걸 알고 있었어. 그래서 남들이 아직 잠든 밤부터 길을 나섰지.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은 남을 따라 하는 대신, 자기한테 맞는 걸음을 찾아낸단다.
아빠가 이 이야기에서 제일 좋아하는 자리는 소가 첫째를 놓치고도 순하게 웃던 대목이야. 밤새 걸은 그 길이 어디로 사라진 게 아니거든. 등이 따뜻했다고 말할 줄 아는 마음은 참 넉넉해 보이더라.
우리 아가도 살다 보면 아깝게 무언가를 놓치는 날이 있을 거야. 그럴 때 우리 아가가 걸어온 밤길만은 스스로 알아봐 주었으면 좋겠어. 아빠는 그 걸음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보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