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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옛이야기 · 이솝 우화 '양치기 소년'

양치기 소년

서양 전래동화 · 아빠 태담 잠자리 이야기 · 약 4분

매애, 매애. 푸른 언덕 위에서 양들이 한가로이 울고 있었습니다. 그 곁에는 양치기 소년이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어요. 마을에서 가장 높고, 가장 조용한 풀밭이었지요.

해는 좀처럼 기울 줄을 몰랐어요. 소년의 하루는 길고 또 길었습니다. 여기에는 말을 걸어 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얘들아, 너희는 심심하지도 않니?” 소년이 물어도 양들은 풀만 뜯었답니다. 저 아래 마을에서는 사람들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요.

그러다 문득, 짓궂은 장난 하나가 떠올랐답니다. 소년은 두 손을 입에 모으고 마을을 향해 외쳤어요. “늑대다! 늑대가 나타났어요!”

잠시 뒤, 언덕길로 마을 사람들이 헐레벌떡 올라왔습니다. 괭이를 든 아저씨도, 물동이를 내려놓고 온 아주머니도,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도 있었지요. 다들 숨을 몰아쉬며 양 떼부터 둘러보았답니다.

“늑대는요, 사실 없어요. 너무 심심해서 그랬어요.” 소년이 작게 웃자 어른들은 말없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지요. “저런, 얼마나 놀랐는지 아니.” 할아버지가 이마의 땀을 닦았답니다.

어른들이 내려간 뒤, 언덕은 다시 조용해졌지요. 그런데 여럿이 둘러섰다 간 그 자리가 자꾸만 생각나는 거예요. 소년은 처음으로, 조용한 언덕이 싫어졌답니다.

며칠 뒤, 소년은 또 한 번 외치고 말았답니다. “늑대다! 이번엔 진짜예요!” 사람들은 이번에도 붉어진 얼굴로 달려와 주었어요.

하지만 풀밭에는 늑대 그림자도 없었지요. “얘야, 말이란 참 귀한 거란다. 거짓에 자꾸 실리면 힘을 잃어버리거든.” 할아버지는 화를 내는 대신 소년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내려가는 어른들의 등이 그날따라 작아 보였어요.

그리고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풀숲 너머를 소리 없이 지나가는 기다란 잿빛 그림자 하나. 멀리서 낮은 울음소리가 길게 들려왔지요.

“늑대다! 정말로 늑대가 왔어요!” 소년은 목이 아프도록 외치고 또 외쳤습니다. 그런데 마을 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소년의 말은 어느새 힘을 잃어버린 뒤였던 거지요.

소년은 눈물을 참고 양들 앞을 막아섰어요. “괜찮아, 얘들아. 내가 여기 있어.” 그러고는 긴 막대기를 높이 들어 크게 휘둘렀지요. 잿빛 그림자는 걸음을 돌리더니 숲 깊은 곳으로 사라졌답니다.

한참 뒤에야 등불을 든 어른들이 언덕으로 올라왔습니다. 양들은 한 마리도 다치지 않고 소년 곁에 모여 있었지요. “아이고, 혼자서 얼마나 무서웠니.” 아주머니가 두 팔을 벌려 안아 주자, 소년은 그만 눈물이 났답니다.

소년은 한 사람 한 사람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저씨,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아주머니,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두 손으로 잡았지요.

“이제부터 제 입에서는 진짜 말만 나올 거예요.” 할아버지가 커다란 손으로 소년의 어깨를 감싸 주었어요. “그 말이면 됐다. 내일부터는 나도 이 언덕에 올라와 네 말동무가 되어 주마.” 어른들의 얼굴에도 어느새 웃음이 되돌아왔지요.

다 함께 언덕을 내려와 양들을 우리 안에 들였습니다. 매애, 매애. 양들은 서로 몸을 맞대고 따뜻한 숨을 나누었어요. 그 곁에서 소년과 마을 사람들은, 내일 저녁 언덕에서 나눌 이야기를 저마다 한 아름씩 안고 서 있었지요.

아빠 한마디 ✶

좀처럼 해가 지지 않는 언덕, 풀 뜯는 양들 곁에서 무릎을 안고 마을만 내려다보던 아이의 하루가 자꾸 마음에 남아. 그 거짓 외침 속에는 '누가 내 곁에 좀 와 주세요' 하는 외로운 마음이 숨어 있었지 싶거든. 그래서 아빠는 소년이 얄밉기보다는 내내 안쓰러웠단다.

아빠도 어릴 적, 심심한 걸 못 참고 아프다는 엄살로 할머니를 헛걸음하게 한 저녁이 있었어. 그런데 할머니는 야단 대신 '많이 심심했구나' 하시며 아빠 손을 꼭 잡아 주셨지. 그 따뜻한 손이 어떤 꾸지람보다 오래 아빠 마음에 남았단다.

우리 아가야, 심심하고 외로운 날엔 꾸며 낸 외침 대신 그냥 아빠를 불러 주렴. 몇 번을 헛걸음하게 해도 좋으니, 아빠는 언덕길을 헐레벌떡 오르던 마을 사람들처럼 달려갈게. 그리고 네 말이 언제나 진짜 말의 힘을 갖도록, 아빠가 먼저 네 말을 끝까지 믿어 줄게.

잘 자렴, 우리 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