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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옛이야기 · 일본 전래동화 '우라시마 타로'

거북이 등을 타고

동양 전래동화 · 아빠 태담 잠자리 이야기 · 약 4분

아침 바닷가 모래밭이 아이들 소리로 한바탕 소란스러웠습니다. 막대기를 든 작은 손들이 한가운데로 자꾸 모여들었지요. 그 복판에는, 목을 잔뜩 움츠린 커다란 거북 한 마리.

그물을 손질하던 젊은 어부 타로가 한달음에 달려왔어요. “얘들아, 그 거북이랑 이 은빛 생선을 바꾸지 않을래?” “와, 진짜 크다! 좋아, 바꿀래!” 아이들은 생선을 받아 들고 앞다투어 갯바위 쪽으로 몰려갔지요.

타로는 거북을 두 손으로 안아 바닷물 가까이 옮겨 주었어요. 등딱지에 묻은 모래도 손바닥으로 찬찬히 털어 주었지요. “많이 놀랐지? 바다가 네 집이니, 어서 돌아가렴.” 거북은 물가에서 한 번 뒤돌아보고는, 파도 사이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며칠 뒤, 타로가 물가에서 그물을 걷는데 저 너머 파도 쪽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타로님, 타로님.” 고개를 들자, 그날의 그 거북이 물결 위로 둥근 등딱지를 내밀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거북의 말씨는 느리고 아주 공손했지요. “그날은 정말 고마웠어요. 오늘은 바다 밑 용궁으로 은인을 모시러 왔어요.” 타로는 설레는 가슴으로 그 넓고 든든한 등에 올라앉았답니다.

신기하게도 물속인데 숨이 조금도 답답하지 않았어요. 위를 올려다보면 햇빛이 긴 기둥이 되어 물속 깊이 꽂혀 들었지요. 푸른 물고기 떼가 그 빛 기둥 사이를 강물처럼 헤엄쳐 지나갔더랍니다.

이윽고 저 아래에서 용궁의 크고 둥근 지붕이 떠올랐답니다. 붉은 산호 기둥과 흰 산호 기둥이 번갈아 서서 진주조개 대문을 받치고 있었대요. 대문 앞에는 해파리들이 둥근 등불이 되어, 푸른 물빛 사이로 반짝 빛을 밝혔지요.

대문이 열리자 고운 비늘 옷을 입은 공주님이 몸소 마중을 나왔습니다. “먼바다까지 와 주셔서 고마워요. 오늘 잔치의 가장 좋은 자리는 손님 자리랍니다.” 거북에게 이야기를 벌써 다 들었다며, 공주님은 타로의 손을 이끌었지요. 깊은 물처럼 고요하고 다정한 목소리.

잔치 마당에서는 도미와 넙치가 지느러미를 활짝 펴고 너울너울 춤을 추었어요. 붉은 새우들은 수염을 흔들며 장단을 맞추었고요. 오색 물고기 떼가 지나갈 때마다 마당 가득 무지갯빛이 물감처럼 번졌답니다.

소라 나팔이 낮고 길게 울리고, 전복 껍데기 접시에는 달콤한 바다 열매가 그득 쌓였습니다. “세상에, 눈이 두 개뿐인 게 아쉽네요. 다 담아 가고 싶은데요.” “그럼 천천히 보고 가세요. 용궁의 하루는 아주 길답니다.” 타로는 구경하다 말고 저도 모르게 손뼉을 쳤답니다.

꿈결 같은 하루가 지나고, 타로는 문득 물 위의 제 바닷가가 그리워졌어요. “고맙습니다, 공주님. 이제 제 그물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 볼게요.” 공주님은 아쉬워하면서도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지요.

헤어지기 전, 공주님은 조개 무늬가 새겨진 작은 상자를 타로의 두 손에 얹어 주었습니다. “이 상자는 우리 약속이에요. 열지 말고 품고 계시면, 언젠가 꼭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요.” 타로는 상자를 품에 안고 몇 번이고 허리 숙여 인사했답니다.

거북의 등을 타고 물 위로 올라오는 길은 올 때보다 짧게 느껴졌지요. 모래밭에 내려선 타로에게 거북이 목을 길게 빼고 말했어요. “안녕히 계세요, 은인님. 파도가 잔잔한 날엔 제가 이 물가로 인사하러 올게요.”

그런데 모래밭 끝에 있어야 할 제 오두막이 보이지 않았지요. 언덕의 소나무는 몰라보게 굵어졌고, 지붕들도 죄다 처음 보는 모양이었어요. 길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이름을 대자,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요. “우라시마 타로라면, 우리 할머니의 할머니 적에 바다로 나갔다는 그 어부 말이우?”

바닷속의 하루가, 뭍에서는 그렇게나 긴 세월이었던 거예요. 타로는 잠깐 어리둥절했지만, 품에 안은 상자가 참 따뜻해서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답니다. 열지 말고 품고 있으면 꼭 다시 만나게 된다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물결처럼 되살아났지요.

타로는 언덕에 앉아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바닷바람이 이마를 천천히 지나갔고, 가슴에는 열지 않은 상자가 가만히 안겨 있었어요. 언젠가 다시 만나자던 약속은, 열어 보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었지요. 타로는 짭조름한 바닷바람을 깊이 들이마시고, 파도 소리에 제 숨을 천천히 포개었습니다.

아빠 한마디 ✶

타로의 품에 남은 조개 무늬 상자 말이야. 아빠는 그 상자가 끝내 열리지 않아서 오히려 좋았어. 뚜껑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몰라도,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들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잖니. 열어서 확인하는 대신 품어서 믿어 주는 것, 그게 약속을 아끼는 마음인가 봐.

보고 싶은 마음은 서두르지 않아도 길을 잃는 법이 없단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 너를 아빠가 이렇게 또렷이 그리워하는 것만 봐도 그래. 너를 만날 날을 기다리는 동안, 아빠도 열지 않은 상자 하나를 품고 사는 셈이야.

우리 아가가 처음 보는 넓은 세상으로 헤엄쳐 나가는 날, 아빠는 너를 태워 준 그 거북이처럼 넓고 든든한 등이 되어 줄게. 그리고 네가 어디까지 다녀오든, 물가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늘 있다는 걸 기억해 주렴. 그게 아빠가 너와 맺어 두는, 열어 보지 않아도 되는 약속이란다.

잘 자렴, 우리 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