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를 낸 당나귀
새끼줄로 입을 꽁꽁 묶은 소금 자루 하나. 바닷가 마을에서 실어 온 하얀 소금이 볼록하게 들어차 있었어요. 이 자루를 언덕 너머 장터까지 나르는 게 회색 당나귀의 몫이었답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주인 할아버지는 마구간 문을 열었지요. 굳은살 박인 손으로 당나귀 등을 한 번 쓸어 주고, 자루를 한쪽씩 조심조심 얹었습니다. “끈이 배기진 않니? 오늘도 잘 부탁한다.”
장터 가는 길에는 작은 개울이 하나 흘렀어요. 졸졸, 돌돌, 둥근 돌 틈을 굴러가는 맑은 물소리. 당나귀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징검돌을 하나하나 밟아 건넜대요.
그런데 그날 아침에는 이끼 낀 돌이 유난히 미끄러웠던 거예요. 앞발이 쭈욱 미끄러지더니, 당나귀는 개울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고 말았지요. 차가운 물이 자루를 찰랑찰랑 감싸 안았습니다.
허둥지둥 일어난 당나귀가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어? 등이 왜 이렇게 가볍지?” 자루 속 소금이 물에 녹아 졸졸 흘러가 버린 거랍니다.
“오늘 소금은 개울이 다 가져갔구나.” 주인은 홀쭉해진 자루를 들어 보더니 껄껄 웃고 말았어요. 그날은 장터 대신 집으로, 둘이서 터벅터벅 돌아왔고요.
그날 밤 당나귀는 여물을 오물오물 씹다가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개울에 앉기만 하면 짐이 가벼워진단 말이지!” 꼬리가 저절로 살랑거렸어요. 아주 근사한 꾀를 찾아냈다고 믿었거든요.
그 뒤로 당나귀는 개울만 만나면 일부러 다리를 접었다지요. 미끄러진 척 눈을 질끈 감고는 첨벙 주저앉는 거예요. 자루 속 소금은 번번이 물살에 녹아 사라졌답니다.
주인은 개울가에 서서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어요. 그러고는 꾸짖는 대신 한쪽 눈을 찡긋 감았지요. “이 녀석, 꾀가 났구나. 그럼 내일은 다른 짐을 실어 보자꾸나.”
이튿날 새벽, 당나귀 등에 얹힌 자루는 어제보다 두 배나 볼록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깃털처럼 가뿐했어요. 그 안에는 하얀 솜이 폭신폭신 들어 있었거든요. 주인은 아무 말 없이 휘파람을 휘휘 불며 앞장을 섰고요.
개울에 닿자 당나귀는 늘 하던 대로 다리를 접었대요. 첨벙! 그런데 일어서려고 하니 몸이 꿈쩍도 하지 않는 거예요. 솜이 물을 잔뜩 머금어 바위처럼 무거워진 거지요.
“어, 어어? 이번엔 왜 이렇게 무겁지?” 당나귀는 네 다리에 힘을 꽉 주어 겨우겨우 일어섰어요. 주인은 고삐를 쥔 채 어깨만 들썩였답니다. “오늘 개울은 짐을 덜어 주지 않는 모양이구나.”
장터로 가는 길은 기다란 언덕이었습니다. 젖은 솜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한 발 디딜 때마다 자루가 등을 꾹꾹 눌렀어요. 주인은 재촉하지 않고 당나귀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었지요.
숨을 고르며 오르는 동안, 당나귀는 몇 번이고 개울 쪽을 돌아다보았어요. “후유, 무거워라…” 꾀를 내어 고른 길이, 오늘은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길이 되어 있었답니다.
언덕 꼭대기가 한 뼘씩 가까워졌어요. 당나귀는 터벅터벅 제 네 발로 그 한 뼘 한 뼘을 올랐지요. 꼭대기에 올라선 당나귀는 한참 동안 제 발굽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해 질 녘 돌아오는 길, 당나귀는 다리를 접는 대신 돌을 하나하나 골라 디디며 개울을 건넜습니다. 건너편에 닿자 주인이 당나귀 목을 천천히 쓰다듬었어요. “잘 건넜다, 우리 회색이.” 졸졸, 돌돌, 개울물 소리가 작은 발굽 뒤를 한참이나 따라왔답니다.
우리 아가, 개울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던 당나귀 생각나니? 처음에 당나귀는 물이 짐을 덜어 주는 줄 알았지. 그런데 솜을 진 날에는 같은 개울이 짐을 바위처럼 무겁게 만들었어. 질러가는 길에도 저마다 무게가 있다는 걸, 당나귀는 언덕을 오르며 혼자 알아냈단다.
꾀를 내어 고른 길과 터벅터벅 걸어가는 길, 우리 아가라면 어느 쪽을 고를까? 아빠는 네가 질러가는 길 앞에서 한 번 더 멈춰 서고, 미끄러진 척하는 대신 또박또박 건널 거라고 믿어. 조금 느려도 제 걸음으로 디딘 길은, 물에 젖어도 무거워지지 않거든.
개울에서 헛디뎌 첨벙 주저앉아도 괜찮단다. 할아버지도 꾸중 한마디 없이 당나귀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어 주었잖니. 그러고는 건너편에서 목을 쓰다듬으며 딱 한마디만 했지. "잘 건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