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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옛이야기 · 한국 전래동화 '바보 사위'

바보 사위

한국 전래동화 · 아빠 태담 잠자리 이야기 · 약 4분

새신랑은 밤이 깊도록 등잔 앞에 앉아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혀끝에 굳은살이 박이겠다 싶을 만큼, 같은 말을 백 번도 넘게 외우고 또 외우는 참이었지요. 내일은 혼인하고 처음으로 처갓집에 인사드리러 가는 날이거든요. 행여 말 한마디 잘못해서 고운 아내를 무안하게 할까 봐, 그 걱정에 잠이 오지 않는 거였어요.

신랑은 마음이 미덥고, 소같이 부지런한 사람이었어요. 다만 말이 마음을 자꾸 한 발씩 늦게 따라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요. 동네 사람들도 저 신랑 심지 하나는 곧다고 입을 모았대요. 바느질하던 아내는 그 뒷모습을 보며 가만히 웃음을 삼켰답니다.

보다 못한 아내가 바느질감을 내려놓고 등잔 곁으로 다가앉았어요. “마당에 들어서면 먼저 이렇게 인사하세요. 장인어른, 장모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하고요.” 신랑은 눈을 감고 더듬더듬 따라 해 보았지요. “장인어른, 장모님… 그,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아내는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나머지도 일러 주었습니다. “마루 밑에서 바둑이가 나오거든, 그놈 참 실하게 생겼습니다, 해 보세요. 밥상을 받거든, 장모님 국이 참 달큰합니다, 하면 돼요.” 쉬운 말 세 마디가 신랑에게는 천자문보다 어려웠대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신랑의 이마에 어느새 땀까지 맺혔어요.

그날 밤 신랑은 자리에 누워서도 외우고, 물을 마시러 나가서도 외웠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실하게 생겼습니다, 달큰합니다, 평안하셨습니까, 실하게 생겼습니다. 꿈속에서도 누가 자꾸 그 세 마디를 묻는 것만 같았고요. 첫닭이 울 무렵에야 신랑은 세 마디를 베개 삼아 겨우 잠이 들었대요.

이튿날 아침, 아내는 새 두루마기를 입혀 주고 옷고름을 반듯하게 매만져 주었어요. 그러고는 짚으로 엮은 달걀 한 꾸러미를 품에 안겨 주었지요. “말이 좀 섞여도 괜찮아요. 당신 마음은 말보다 먼저 닿을 테니까요.” 아내는 마을 어귀까지 나와, 고개를 넘어가는 그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답니다.

고개를 셋이나 넘는 동안, 신랑은 달걀 꾸러미를 아기 안듯 품에 꼭 안고 걸었습니다. 그런데 저만치 처갓집 사립문과 낮은 굴뚝이 보이자, 가슴이 방망이질하듯 마구 뛰기 시작했어요. 밤새 외운 말들이 머릿속에서 죄다 뒤섞이기 시작했답니다.

마당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마루 밑에서 바둑이가 꼬리를 치며 달려 나왔지요. 신랑은 허둥지둥 갓을 고쳐 쓰고, 그만 바둑이 앞에 허리를 깊이 굽혔습니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장인어른!” 바둑이야 영문을 알 리가 있나요.

그 소리에 진짜 장인어른이 헛기침을 하며 안방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신랑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다음 인사를 꺼낸다는 게, 그만 이렇게 되고 말았지요. “아이고, 그놈 참 실하게 생겼습니다!” 장인어른은 눈이 커다래져서 애먼 수염만 쓸어 보았답니다.

이번에는 부엌에서 장모님이 행주치마에 젖은 손을 닦으며 내다보았어요. 신랑은 마음이 급한 나머지, 남은 말을 통째로 먼저 꺼내 놓았지요. “장모님 국이 참 달큰합니다!” 상은커녕, 아직 물 한 모금 내오기도 전인데요.

“아이고머니, 우리 사위. 국은 이제 막 불에 올렸는데, 벌써 맛을 보았소?” 그 정다운 핀잔에 마당 가득 웃음이 터졌답니다. 바둑이도 신이 나서 마당을 한 바퀴 돌았고요. 장인어른의 허연 수염 사이로도 웃음이 자꾸 새어 나왔지요.

신랑은 낯이 홍시처럼 발갛게 달아올라,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처음부터 다시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다, 다시 하겠습니다! 바둑아,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아니지! 장인어른이 실하게 생기시고… 아이고, 그게 아니라! 국이, 국이 그간 달큰하셨습니까!” 허둥지둥 바로잡을수록 말은 더 신나게 뒤엉켰지요.

그 말에 온 집안이 또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어요. 그 웃음 속에서도 신랑의 두 팔은 달걀 꾸러미를 조금도 놓지 않았답니다. 장인어른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웃음기를 거두고 천천히 다가와, 넓적한 손으로 사위의 등을 두드려 주었지요.

“말이야 좀 섞이면 어떤가. 고개 셋을 넘어오면서 달걀 한 알 안 깨뜨린 그 마음이면, 나는 더 바랄 게 없네.” 장모님도 얼른 곁에 와서, 사위의 넓은 등을 몇 번이고 쓸어 주었지요. “어서 들어와요, 우리 사위. 그 달큰하다는 국, 이제 진짜로 맛보아야지요.”

다 같이 둘러앉은 밥상 앞에서, 신랑은 김이 오르는 국을 크게 한 술 떠먹었습니다. 그러고는 이번에는 밤새 외운 말 대신, 마음에서 곧장 올라온 말을 천천히 꺼냈답니다. “장모님… 국이 참 맛있습니다.” 세 사람의 웃음소리가 이번에는 나란히 포개졌지요.

해가 기울자 장인 장모는 사립문 밖 고갯길까지 사위를 배웅해 주었지요. 비어 있던 달걀 꾸러미에는 곶감이며 볶은 콩이며, 새 식구 몫의 정이 도로 가득 담겼고요. 첫 고개를 오르며 신랑은 다음 인사를 벌써 나직이 외웠는데, 이번에는 말이 하나도 뒤엉키지 않았답니다. 그 곁을 저녁 바람이 고개 너머까지 나란히 따라 걸었더랍니다.

아빠 한마디 ✶

우리 아가야, 아빠는 새신랑이 밤새 외우던 세 마디가 참 좋았어. 평안하셨습니까, 실하게 생겼습니다, 달큰합니다. 마당에서 그 말들이 죄다 뒤섞였는데도, 이상하지, 듣는 사람들 얼굴은 오히려 더 환해졌잖아. 서툰 말 속에 든 마음이 그만큼 또렷했던 거란다.

사위의 등을 두드려 주던 장인어른의 넓적한 손과, 몇 번이고 쓸어 주던 장모님의 손을 아빠는 오래 생각했어. 그 손들은 뒤엉킨 말 너머, 고개 셋을 넘도록 달걀 한 알 깨뜨리지 않은 품을 읽어 준 거야. 말은 틀려도 마음은 틀리지 않는다는 걸, 두 분은 손바닥으로 먼저 알고 있었나 봐.

아빠도 너에게 그런 마당이 되어 줄게. 네가 말을 더듬는 날에도, 외운 것을 몽땅 뒤섞어 놓는 날에도, 제일 먼저 웃으며 등을 두드려 주는 손이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실수한 자리에도 사랑은 끄떡없이 남는다는 걸, 아빠 손바닥이 늘 먼저 말해 줄게.

잘 자렴, 우리 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