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고개
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 뒤에 나지막한 고개가 하나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그 고개를 삼년고개라고 불렀어요. 한 번 구르면 딱 삼 년 치 기운만 남는다더랍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고개에 들어설 때면 숨을 죽였어요. “발밑 조심하시오.” 서로 이렇게 일러 주며 아주 천천히 걸었대요.
그 마을에 마음씨 고운 할아버지가 한 분 살고 계셨지요. 장에 다녀오는 길이면 꼭 그 고개를 넘으셨습니다. 지팡이로 땅을 톡톡 짚으며 조심조심 걸으셨어요. 그 고개만은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거든요.
바스락바스락, 낙엽이 두툼하게 깔린 가을 저녁. 장에서 돌아오던 할아버지가 그만 돌부리에 걸리셨어요. 데구르르, 딱 한 바퀴.
“아이고, 이를 어쩌나. 이제 남은 건 삼 년 치뿐이구나.” 풀밭에 누운 할아버지는 하늘만 멀거니 바라보셨습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요.
집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그 길로 자리에 누우셨습니다. 밥도 잘 넘기지 못하고 긴 한숨만 쉬셨어요. “영감, 죽이라도 한 술 뜨셔야지요.” 할머니의 목소리가 자꾸 젖어 들었답니다.
소문을 들은 이웃들이 하나둘 찾아왔더군요. “저런, 하필 그 고개에서.” 다들 안타까운 얼굴로 고개만 저었어요. 그래도 할아버지의 굳은 마음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지요.
그때 방문이 삐거덕, 살며시 열렸습니다. 누구였을까요. 마을에 사는 어린아이 돌이가 들국화 한 송이를 들고 서 있었거든요.
“할아버지,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이세요?” 할아버지는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셨어요. “삼년고개에서 그만 굴렀단다. 이제 삼 년 치뿐이야.”
돌이는 눈을 반짝반짝 뜨고 잠깐 생각했답니다. 그러더니 방긋 웃었지요. 무언가를 딱 알아낸 얼굴. “할아버지, 그러면 아주 좋은 수가 있어요!”
“한 번 구르면 삼 년 치라면서요? 그럼 두 번 구르면 육 년 치, 네 번이면 십이 년 치잖아요.” 할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셨습니다.
“그럼… 열 번을 구르면?” “삼십 년 치지요!”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답니다. 그렇게 쉬운 걸 여태 몰랐구나 싶으셨대요.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챙겨 고개로 올라가셨지요. 폭신한 풀밭 위로 데구르르, 데구르르. 구를 때마다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답니다.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뒤따라온 돌이가 손뼉을 치며 함께 세었습니다. “할아버지, 한 번만 더요!” 가을 햇살이 두 사람을 따뜻따뜻 감싸 주었어요.
무섭던 고개가 웃음 나는 고개로 바뀐 날. 할아버지는 다시 장에 다니시고, 밥도 맛있게 드셨지요. 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그 고개 앞에서 어깨를 폈어요. 아이들은 그 고갯길에서 마음 놓고 뛰어놀았지요.
할아버지는 그 뒤로 아주 오래오래 기운차게 지내셨답니다. 고개에서 누가 넘어지면 사람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이왕 구른 김에 한 번 더 구르시구려!” 삼년고개는 그렇게 마을에서 가장 다정한 고개가 되었지요.
할아버지를 다시 일으킨 건 좋은 약도, 대단한 어른의 말씀도 아니었어. 같은 고개, 같은 구르기를 다르게 바라본 어린 마음 한 마디였단다.
할아버지가 데구르르 구를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어. 구르는 자리가 폭신했거든. 돌이의 한 마디도, 그 풀밭도 함께 할아버지를 일으킨 거란다. 우리 아가한테는 아빠가 그 풀밭이 되어 주고 싶어. 마음껏 굴러도 괜찮은 자리, 굴러 본 만큼 웃을 수 있는 자리 말이야.
아빠는 우리 아가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무서운 고개 앞에서 데구르르 한 번 더 굴러 볼 줄 아는 사람 말이야.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떤 고개도 오래오래 웃으며 넘는 길이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