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너머에서 온 말
북쪽 끝, 바람이 몹시 많은 마을. 낮은 언덕 아래 작은 집에서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둘은 말 한 마리를 기르며 지냈지요.
할아버지는 서두르는 법이 없었지요. 말투도 걸음도 느릿느릿했어요. “오늘은 구름이 참 곱구나.” 마당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하루의 낙이었답니다.
어느 날 아침, 마구간 문이 활짝 열려 있었어요. 안은 텅 비어 있었고요. “아버지, 말이 없어요! 언덕까지 가 봤는데도 없어요.” 아들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어쩌나요, 그 귀한 말을 잃으셨으니.”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와 안타까운 얼굴로 서 있었어요. 누구는 혀를 차고, 누구는 마구간 문을 붙잡고 한숨을 쉬었지요.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었답니다. “글쎄요. 이게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그 웃음에는 슬픔도 자랑도 없었고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갔지요.
몇 달이 지난 저녁, 언덕 너머에서 또각또각 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랍니다. 달아났던 말이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지요. 저물녘 하늘 아래, 나란한 두 그림자.
갈기가 유난히 고운 말 한 마리를 옆에 데리고 왔답니다. “아버지, 저것 좀 보세요. 두 마리예요!” 어둑하던 마당이 대번에 환해졌습니다. 아들은 새 말의 갈기를 쓸어 보고 또 쓸어 보았어요.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지요. “하나 잃고 둘을 얻으셨네요!” 사람들은 새 말이 어디서 왔을까 저마다 짐작을 늘어놓았지요.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글쎄요. 이게 걱정거리가 될지 누가 알겠소.” 할아버지는 이번에도 조용했어요. 그러고는 또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답니다.
새로 온 말은 힘이 좋고 다리가 튼튼했답니다. 아들은 아침마다 들판을 달렸어요. “바람보다 빠른 것 같아요!” 웃음소리가 언덕까지 울렸대요.
그런데 봄볕이 좋던 어느 아침, 아들이 그만 말에서 미끄러지고 말았어요. 발을 접질려 한동안 마루에 앉아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프진 않은데, 달리질 못하니 심심해요.”
“저런, 하필 다리를 다치다니.” 사람들이 또 찾아와 위로했어요. 할아버지는 아들의 다리를 가만히 쓸어 주었지요. “글쎄요. 이게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그해 가을, 먼 곳에서 큰 소란이 일었습니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멀리 떠나야 했어요. 아들은 마루 끝에 앉아 떠나는 이들에게 오래오래 손을 흔들었대요. 아들만은 다리 때문에 아버지 곁에 남았답니다.
이듬해 봄, 떠났던 젊은이들이 하나둘 마을로 돌아왔어요. 골목마다 반가운 인사가 오갔답니다. 마을은 오래지 않아 예전처럼 조용해졌습니다. 아들의 발도 어느새 씩씩하게 다 나았고요.
“어르신은 어떻게 늘 그렇게 담담하십니까?” 마당에 나란히 앉은 이웃이 물었어요.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손을 잡고 온다오. 서둘러 울고 웃을 것이 없지요.” 아들은 아버지 옆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그날 밤에도 마구간에서는 말들이 새근새근 잠이 들었답니다. 언덕 위로 달이 천천히 떠올랐어요. 아들은 아버지 무릎 곁에서 벌써 눈이 감겼지요. 바람 많은 마을, 참 고요한 밤.
"글쎄요, 이게 걱정거리가 될지 누가 알겠소." 할아버지는 좋은 일에도 나쁜 일에도 늘 그렇게 말했단다. 언덕 너머에서 무엇이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걸, 조용히 알고 계셨거든.
문은 열려 있고, 마구간 안은 텅 비어 있었지. 그 앞에서 할아버지는 서두르지 않았단다. 그 조용한 마음이 우리 아가에게도 닿았으면 좋겠어. 또각또각 발굽 소리는 늘, 우리가 잊고 있던 저녁에 들려오거든. 그러니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좋은 일이 찾아온 날에도 마당에 앉아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렴. 기쁨과 슬픔은 서로 손을 잡고 온단다. 그걸 아는 마음이, 아빠가 우리 아가에게 주고 싶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