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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옛이야기 · 이솝 우화 '까마귀와 물병'

목마른 까마귀

서양 전래동화 · 아빠 태담 잠자리 이야기 · 약 4분

아주 먼 옛날, 볕이 오래 내리쬐던 여름 들판이 있었습니다. 시냇물도 마르고 웅덩이도 말랐지요. 풀잎마저 고개를 폭 숙였어요.

그 들판 위를 까마귀 한 마리가 천천히 날았지요. 날개는 무겁고 목은 바싹바싹 탔어요. “물 한 모금만. 딱 한 모금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찾아다녔는데도 물은 보이지 않더랍니다. 까마귀는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가쁜 숨을 골랐어요.

“저기 반짝이는 게 뭐지?” 담장 아래에 키가 큰 물병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까마귀는 한달음에 내려앉았지요.

병 속을 들여다보니 바닥에 물이 한 뼘쯤 남아 있었답니다. 반가운 마음에 부리를 쑥 넣었어요. 그런데 부리 끝이 물에 닿지를 않는 거예요.

까마귀는 병을 톡톡 두드려 보았어요. 옆으로 밀어도 보고, 부리로 당겨도 보았지요. 병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참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옆에 앉았습니다. “그거 안 될걸요. 나도 아까 해 봤거든요.” 참새는 말이 아주 빨랐어요.

“병을 넘어뜨리면 되잖아요.” “넘어뜨리면 물이 다 흙으로 스며들 텐데.” 까마귀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지요.

까마귀는 물병 앞에 가만히 앉아 오래오래 생각했답니다. 발밑에는 자잘한 조약돌이 흩어져 있었어요. 비가 오면 웅덩이 물이 차오르던 일이 문득 떠올랐지요.

무언가가 들어가면 물은 위로 올라옵니다. 까마귀는 조약돌 하나를 물어다 병 속에 떨어뜨렸어요. 톡. 물이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올라왔지요.

“겨우 그만큼요?” 참새가 눈을 동그랗게 떴어요. “그만큼씩 백 번이면 되잖니.” 까마귀는 다시 조약돌을 물러 갔답니다.

톡, 톡, 톡. 해가 기울도록 들판에는 그 소리만 났대요. 까마귀의 부리는 붉어지고, 날개는 자꾸 처졌지요.

참새가 옆에서 함께 작은 돌을 물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하나요.” “고맙구나. 네 것도 꼭 한 뼘이란다.”

돌이 하나씩 쌓일 때마다 물은 손톱만큼씩 올라왔어요. 두 새는 말없이 오르내렸지요. 그림자가 길어지는 줄도 몰랐답니다.

노을이 담장을 붉게 물들일 무렵, 물이 마침내 병 목까지 차올랐지요. 까마귀는 부리를 담그고 천천히 물을 마셨습니다. 참새도 나란히 한 모금 마셨어요.

두 새는 담장 위에 앉아 물든 하늘을 오래 바라보았답니다. “돌 하나로는 어림도 없었는데요.” “그래도 시작은 돌 하나였단다.”

아빠 한마디 ✶

까마귀가 물을 마실 수 있었던 건 부리가 길어서도, 힘이 세서도 아니었어. 조약돌 하나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하나를 기어이 물어다 넣었기 때문이란다.

우리 아가도 언젠가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는 일 앞에 서는 날이 올 거야. 그럴 때 아빠는, 우리 아가가 "이걸로는 안 되는데" 하고 손을 놓는 대신, 톡 하고 하나를 먼저 넣어 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참새가 옆에서 함께 돌을 물어 나르던 대목을 기억해 주렴. 혼자 오래 하는 일에 누군가 조용히 손을 보태 주면, 남은 길이 훨씬 짧아진단다. 아빠는 우리 아가 곁에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싶어.

잘 자렴, 우리 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