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곶감
아주 먼 옛날, 산속 바위에 앉은 호랑이가 어슬렁 몸을 일으켰답니다. 그 산에서 제일 힘이 센 짐승이었지았답니다. 털은 노랗고 줄무늬는 까맸어요. 산에서 제일 힘이 센 건 자기라고 늘 믿고 있었지요.
“이 산에 나보다 무서운 건 없지.” 호랑이가 어깨를 으쓱 올렸습니다. 바위도 바람도 제 앞에서는 숨을 죽인다고 여겼거든요.
눈, 눈, 또 눈.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어요. 산에 먹을 것이 자꾸 줄어들자, 호랑이는 어슬렁어슬렁 마을로 내려왔지요.
마을은 벌써 캄캄했지요. 창호지 문마다 노란 불빛이 따뜻따뜻 배어 나왔어요. “저 안에는 뭐가 있으려나.” 호랑이는 담장 옆에 몸을 숨기고 가만히 귀를 세웠습니다.
“으앙, 으앙.” 어느 집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어요. 서럽고 또 서러운 울음.
엄마의 목소리가 도란도란 이어졌습니다. “아가야, 그만 울렴. 자꾸 울면 호랑이가 온단다.” 그래도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어요.
담장 밖에서는 호랑이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답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도 그치지 않네?” 어쩐지 머쓱해지고 말았지요.
“그럼, 곶감 줄까?” 엄마가 아기를 안고 살랑살랑 흔들었지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울음이 뚝 그쳤어요.
방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어요. 호랑이는 숨이 턱 멎는 것만 같았습니다. “곶감? 곶감이 대체 뭐길래?”
호랑이의 머릿속은 온통 그 두 글자. 제 이야기에도 그치지 않던 울음이 한마디에 뚝 멎었으니까요. “곶감이라는 건 나보다 훨씬 무서운 것이로구나.”
마침 그때, 처마 밑에 매달린 무언가가 바람에 흔들렸답니다. 하얀 가루가 뽀얗게 앉은, 말랑말랑한 것이었어요. 사실은 곶감이었지만 호랑이가 알 리 없었지요.
호랑이는 그것이 저를 내려다보는 줄 알았지 뭐예요. 등줄기가 오싹, 꼬리가 바짝 섰어요. “고, 곶감이다! 곶감이 나를 보고 있어!”
“걸음아 날 살려라!” 호랑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대요.
눈밭 위로 총총총 이어진 발자국. 산까지 한달음에 달려가서야 겨우 멈춰 섰습니다. “산에서 제일 무섭다더니, 내가 이게 뭐람.” 숨을 고르는 사이 슬며시 부끄러워졌어요.
그 뒤로 호랑이는 마을에 내려오지 않았대요. 눈 덮인 산에서 포근포근 겨울을 났지요. 가끔 그 밤을 떠올리며 혼자 슬쩍 웃곤 했답니다.
그럼 그 집 아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엄마 품에 안겨 달콤한 곶감 한 조각을 오물오물 먹었어요.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근새근 잠이 들었답니다.
호랑이는 곶감이 저보다 무서운 것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곶감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처마 밑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단맛을 모은, 말랑말랑 달콤한 것이었지.
아기의 울음을 그치게 한 건 무서운 힘이 아니라 달콤함이었어. 그 곶감도 처음부터 달지는 않았단다. 추운 처마 끝에 오래 매달려 있었기에 단맛이 든 거야. 누가 울 때 큰 소리로 겁을 주는 사람 말고, 가만히 단것을 건네는 사람. 우리 아가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 아빠는 그런 쪽이 훨씬 힘이 세다고 믿는단다.
지금 아기 귀에 닿는 아빠 목소리도, 그런 곶감이었으면 좋겠어. 무서운 밤도 슬그머니 물러가는, 우리 아가만의 달고 포근한 곶감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