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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옛이야기 ·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

여우와 두루미

서양 전래동화 · 아빠 태담 잠자리 이야기 · 약 4분

아주 먼 옛날, 숲 가장자리에 여우와 두루미가 이웃하여 살았습니다. 여우는 굴에서, 두루미는 미루나무 위에서 살았지요. 만나면 늘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어요.

어느 가을날, 여우가 두루미를 저녁에 불렀답니다. “우리 집에서 같이 밥 먹자. 내가 아주 맛있는 걸 끓일게.”

두루미는 신이 나서 날개를 활짝 폈어요. “가야지, 가고말고.” 그날 하루가 어찌나 길던지요.

여우는 정성껏 수프를 끓였습니다. 냄새가 아주 고소했지요. 그런데 그 수프를 납작한 접시에 담아 내놓았지 뭐예요.

여우는 혀로 할짝할짝 맛있게 먹었어요. 두루미는 긴 부리를 접시에 대 보았지만, 부리 끝만 겨우 젖었지요.

“왜 안 먹어? 맛이 없니?” “아니야, 아주 좋은 냄새인걸.” 두루미는 배가 고픈 채로 집에 돌아갔답니다.

미루나무 위에서 두루미는 오래 생각했어요. 화가 난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조금 서운했지요.

며칠 뒤, 이번에는 두루미가 여우를 불렀대요. “지난번 답례야. 우리 집으로 와.”

두루미도 정성껏 국을 끓였답니다. 그러고는 목이 아주 길고 좁은 항아리에 담아 내놓았어요.

두루미는 긴 부리를 쑥 넣어 잘도 먹었지요. 여우는 항아리에 코를 박아 보았지만, 코끝만 간지러웠습니다.

“왜 안 먹어?” 두루미가 가만히 물었어요. 여우는 그제야 지난 저녁이 떠올랐지요. “아, 그때 네가 이런 마음이었구나.”

여우는 귀가 발갛게 달아올랐답니다. “미안해. 나는 내가 먹기 좋은 그릇만 생각했어.”

두루미는 항아리를 슬며시 옆으로 밀어 놓았어요. “나도 똑같이 했는걸. 우리 둘 다 배가 고프네.”

두 친구는 마주 보고 웃었습니다. 그러고는 부엌으로 가서 함께 상을 차렸지요.

넓적한 접시 하나, 목이 긴 항아리 하나. 상 위에는 그 둘이 나란히 놓였어요. 여우는 할짝할짝, 두루미는 쏙쏙 배부르게 먹었답니다.

그날부터 둘은 자주 함께 밥을 먹었대요. 누가 오든 상 위에는 늘 그릇이 두 가지였지요. “네 그릇도 놓았어.” 그 말이 두 집의 인사가 되었답니다.

아빠 한마디 ✶

여우는 미운 마음으로 납작한 접시를 낸 게 아니었어. 그저 제가 먹기 좋은 그릇만 생각한 거였지. 다정한 마음이 있어도 상대를 한 번 더 떠올리지 않으면, 이런 저녁이 되고 만단다.

두 친구가 참 좋았던 건 그다음이야. 서로 탓하는 대신 부엌으로 가서 그릇을 두 가지 올렸잖니. 미안하다는 말보다 접시 하나를 더 놓는 쪽이, 어떨 때는 훨씬 따뜻하더라.

우리 아가도 누군가와 마주 앉는 날이 오면, 제 앞의 그릇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맞은편 사람이 어떻게 먹고 있는지 한 번 건너다보는 것, 아빠는 그게 다정함의 시작이라고 생각해.

잘 자렴, 우리 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