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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옛이야기 ·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

토끼와 거북이

서양 전래동화 · 아빠 태담 잠자리 이야기 · 약 4분

볕이 잘 드는 숲에 토끼 한 마리가 살았답니다. 다리가 길쭉해서, 달리면 바람도 토끼를 뒤따라오지 못했지요. 숲에서 토끼를 앞지른 친구가 아직 하나도 없었거든요.

같은 숲 연못가에는 거북이가 살았어요. 등에 동그란 집을 지고, 한 걸음 떼는 데에도 한참이 걸렸지요. 그래도 거북이는 걷는 일이 참 좋았답니다.

“거북아, 너는 왜 그렇게 느리니?” 어느 날 토끼가 거북이 옆을 휙 지나가며 물었어요. 느릿느릿 올라오는 거북이의 동그란 고개.

“느려도 나는 쉬지 않고 걷는단다.” “그래? 그럼 저 언덕 위 큰 나무까지 나랑 가 볼래?” 토끼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잔뜩 묻어 있었어요.

거북이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지요. 소문을 듣고 숲속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요. “자, 이 도토리가 떨어지면 출발이에요!” 다람쥐가 가지 위에서 조르르 외쳤답니다.

톡, 하고 떨어지는 도토리 한 알. 토끼는 바람처럼 튀어 나갔고, 발밑에서 낙엽이 사르락 날렸어요. 거북이는 그제야 겨우 한 걸음을 뗐습니다.

토끼는 눈 깜짝할 새 언덕 중턱에 닿았지요. 뒤를 돌아보아도 거북이는 보이지 않았어요. “이거 너무 쉬운걸.” 토끼는 어깨를 으쓱했답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쉬었다 가야지.” 마침 길가에 커다란 나무 그늘이 있었거든요. 바람은 시원하고 풀은 폭신폭신해서, 토끼는 그만 눈을 스르르 감았답니다.

그 사이에도 거북이는 걷고 있었더랍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빠르지는 않았지만, 한 번도 멈추지 않았어요.

오르막을 만나면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걸었어요. 돌부리 앞에서는 천천히 빙 돌아서 갔고요. 거북이 마음속에는 오직 언덕 위 큰 나무 하나뿐이었지요.

해가 기울 무렵, 거북이는 잠든 토끼 곁을 지나갔습니다. “곤히도 자는구나. 깨우지 말아야지.” 거북이는 그저 제 걸음으로, 조용히 걸어갔어요.

토끼가 눈을 떴을 때, 하늘은 벌써 발그레했답니다. 깜짝 놀라 언덕 위를 올려다보았지요. 큰 나무 아래, 거북이가 가만히 서 있었어요.

“아이고, 내가 잠을 자다니.” 토끼는 얼굴이 발개졌어요. 빠른 다리만 믿고 친구를 얕본 마음이 부끄러웠지요. 토끼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거북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먼저 손을 내민 쪽은 토끼였답니다. “네 다리는 참 멋진걸. 나도 네가 부러웠단다.” 거북이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어요.

그날부터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대요. 토끼는 거북이 걸음에 맞추어 나란히 걸었고, 거북이는 토끼의 이야기에 함께 웃었지요.

해가 지고 숲에 별이 반짝반짝 떴어요. 언덕 위 큰 나무는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고요. 그 아래로 느린 발자국과 빠른 발자국이 나란히 남았답니다.

아빠 한마디 ✶

우리 아가야, 거북이는 발이 느린 채로 먼저 닿았단다. 저 멀리 언덕 위 큰 나무 하나만 마음에 두었지. 그리고 한 걸음 또 한 걸음, 멈추지 않았단다.

그 언덕 위 큰 나무는 어떤 나무였을까? 누가 먼저 오는지 재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려 주었으니까. 우리 아가한테도 그런 나무 한 그루가 있었으면 좋겠어. 옆을 보지 않고 그것만 보고 걸어도 되는 나무. 느려도 괜찮아. 쉬어도 괜찮아. 다시 걷기만 하면 된단다.

토끼처럼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도 참 예쁘단다. 잘못을 알아차리고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 곁에는, 늘 친구가 남거든. 아빠는 우리 아가의 발자국도 그렇게 누군가와 나란히 남았으면 좋겠어.

잘 자렴, 우리 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