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 생쥐
아주 먼 옛날, 볕이 잘 드는 숲에 커다란 사자가 살았습니다. 숲에서 힘이 제일 센 짐승이었지요. 그래도 낮잠을 잘 때면 얼굴이 아주 순해졌어요.
그날도 사자는 따뜻한 바위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들었더랍니다. 갈기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어요. 숲도 함께 숨을 죽였습니다.
바위 아래 풀숲에서 생쥐 한 마리가 쪼르르 나왔어요. 아주 작고, 아주 가벼운 생쥐. “어라, 여기 폭신한 언덕이 있네!” 그게 사자의 등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거예요.
생쥐는 신이 나서 언덕 위를 타박타박 뛰어다녔습니다. 그러자 언덕이 움찔, 하고 움직였어요. 커다란 앞발이 생쥐를 살포시 덮었지요.
사자의 앞발 안에서 생쥐는 오들오들 떨었답니다. “놓아주세요. 오늘 저를 보내 주시면, 언젠가 꼭 은혜를 갚을게요.” 아주 작고 가느다란 목소리였어요.
“너처럼 조그만 아이가 나를 돕겠다고?” 사자는 그만 웃음이 나고 말았지요. 하지만 그건 놀리는 웃음이 아니었답니다. 그 작은 마음이 어쩐지 예뻤거든요.
사자는 앞발을 살며시 들어 주었어요. “가거라. 오늘은 네 덕에 실컷 웃었구나.” “고맙습니다. 이 은혜, 꼭 기억할게요.” 생쥐는 꾸벅 인사를 하고 풀숲으로 쪼르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다시 봄이 왔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생쥐는 그날의 말을 하루도 잊지 않았대요. 작은 가슴에 꼭 품고 살았지요.
어느 밤, 숲길에 누군가 굵은 그물을 쳐 두었답니다. 사자는 그것을 미처 보지 못했어요. 한 발 내딛는 순간, 그물이 스르르 조여들었습니다.
사자는 몸을 흔들어 보았어요. 흔들수록 그물은 더 단단히 감겼지요. “이 밤엔 힘이 세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사자는 낮은 소리로 길게 울었답니다.
그 소리는 숲 끝까지 퍼져 나갔지요. 짐승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어요. “매듭이 너무 굵은걸.” “우리 발로는 도무지 안 되겠어.”
그 소리를 풀숲에서 들은 이가 있었던 거예요. 작은 귀 하나가 쫑긋 섰지요. 생쥐였습니다.
생쥐는 한달음에 달려갔답니다. “사자님, 제가 왔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이 굵은 그물을… 네가?” 생쥐는 대답 대신 그물에 코를 대고 사각사각 갉기 시작했어요.
사각사각, 사각사각.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밤새도록 숲에는 그 소리만 났더랍니다. 달이 하늘을 천천히 건너가는 동안, 작은 이빨은 한 번도 쉬지 않았어요.
새벽빛이 번질 무렵, 마지막 한 가닥이 툭 끊어졌지요. 그물이 스르르 풀렸습니다. 사자는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답니다.
사자는 커다란 고개를 숙여 생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습니다. “네가 나를 구했구나.” “약속했잖아요.” 아침 해가 두 그림자를 나란히 감싸 주었어요.
생쥐는 몸집이 아주 작았지만, 그물 한 가닥을 밤새 갉을 줄은 알았단다. 큰 힘으로도 풀지 못한 매듭을, 작은 이빨이 사각사각 풀어 준 거야.
우리 아가도 언젠가 "나는 너무 작은데" 하고 생각하는 밤이 올지 몰라. 그럴 때 아빠는, 우리 아가가 그날의 생쥐를 떠올렸으면 좋겠어. 작다는 건 아무것도 못 한다는 뜻이 아니라, 큰 발이 닿지 못하는 자리까지 갈 수 있다는 뜻이거든.
그리고 사자처럼, 작은 것을 만나거든 앞발을 살며시 들어 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아빠는 그렇게 주고받은 다정함이 언젠가 꼭 우리 아가에게 되돌아온다고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