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순무
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 밭에서 할아버지가 순무 씨앗 하나를 심었답니다. 흙을 도닥도닥 덮고, 물을 조르르 부어 주었어요. “쑥쑥 자라라. 크고 달고 둥글게 자라라.”
연둣빛 싹 하나. 봄비가 조르르 다녀간 다음 날 아침이었대요. 초록 잎은 하루가 다르게 넓어졌지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순무는 자라고 또 자랐어요. 잎이 우산만큼 펼쳐지고, 흙 밖으로 둥근 어깨가 불쑥 솟았지요.
“아이고, 이렇게 커다란 순무는 내 평생 처음 보는걸.” 할아버지는 입이 떡 벌어졌어요. 이제 뽑을 때가 되었지요.
할아버지가 순무 잎을 두 손으로 꼭 잡았어요. “영차, 영차.” 순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답니다.
“할멈, 할멈! 이리 좀 와 보구려.” 할머니가 앞치마 바람으로 달려와 할아버지 허리를 붙잡았어요. “영차, 영차!” 순무는 여전히 꿈쩍도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텃밭 너머로 손녀를 불렀답니다. “제가 갈게요! 저 이래 봬도 힘이 세단 말이에요.” 손녀가 할머니 치맛자락을 꼭 붙들었지요. “영차, 영차!”
“멍멍! 나도, 나도!” 강아지가 꼬리를 붕붕 흔들며 달려왔어요. 손녀 옷자락을 앙 물고 뒤로 뒤로 당겼습니다. “영차, 영차!”
고양이는 담장 위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참이었대요. “무슨 소란이람. 뭐, 심심하던 차니까.” 사뿐 내려와 강아지 꼬리를 살짝 잡았지요. “영차, 영차!”
다섯이 함께 당겼는데도 순무는 흙 속에 가만히 있었어요. 이마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그때 밭두렁 풀숲에서 아주 작은 발소리가 쪼르르 다가왔지요.
“저기… 저도 도울까요?” 조그만 생쥐 한 마리가 앞발을 모으고 서 있었어요. 아무도 웃지 않았답니다.
“이리 오렴. 꼬리 끝은 아직 비었으니까.” 고양이가 꼬리를 슬쩍 내밀어 자리를 만들어 주었지요. 생쥐는 그 끝을 아주 살짝 붙잡았어요.
여섯이 한 줄로 나란히 섰답니다. “영차, 영차, 영차!” 그 순간, 흙 속에서 쑤욱 하는 소리.
커다란 순무가 쑥 뽑혀 나왔습니다. 여섯은 폭신한 흙 위로 폴싹 넘어졌지요. “어이쿠!” “깔깔깔, 넘어져도 좋아요!”
순무는 수레에 겨우 실릴 만큼 컸어요. 할머니는 그날 저녁 제일 큰 솥에 순무국을 끓였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상에, 생쥐 앞에도 조그만 그릇 하나가 놓였지요.
그날 밤, 여섯은 수레 옆에 나란히 기대어 잠이 들었지요. 밭에는 동그란 구덩이 하나만 남았어요. 그 옆에 콕 찍힌, 세상에서 가장 작은 발자국.
줄 맨 끝에 아주 작은 생쥐 한 마리가 붙었단다. 고양이 꼬리를 살짝 붙잡았을 뿐인데, 꿈쩍도 않던 순무가 그제야 쑤욱 뽑혀 나왔지.
순무밭에서 제일 작은 손은 줄 맨 끝에 있었어. 그런데 꿈쩍도 않던 순무를 쑤욱 뽑아 올린 건 바로 그 손이었단다. 생쥐는 제 힘을 재어 보지 않고, 그저 조용히 다가와 물었지. 아빠는 우리 아가가 작은 손이라도 스스럼없이 내미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누가 "저도 도울까요?" 하고 물으면, 자리를 조금 내어 주었으면 해. 나란히 선 손들이 함께 부르는 영차 영차. 아빠가 우리 아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건 그 노래란다.